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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10.27 [17:03]
<4.19혁명 제60주년 기념 특별기고> 4.19혁명의 경과와 영향과 역사적 의의
 
편집부

 

오는 2020419일은 4.19혁명 제60주년이 되는 아주 뜻 깊은 역사적인 날이다.

4.19혁명은 1960419일부터 426일까지 1주일 간 대한한국 전역에서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3.15부정선거에 항거해 청년 학생들과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대한민국 제1공화국을 붕괴시킨 자유민주주의 시민혁명이다.

▲     ©편집부 :

1960.3.15일 투표일에 마산고등학교 학생들이 선거무효를 외치며 시위하는 모습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정권이 인권을 탄압하고 3.15 부정선거로 정권을 연장하려 하자 대구, 광주, 대전, 마산, 충주, 서울 등 대도시의 청년 학생들과 시민들이 항거하여 대대적으로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곤봉과 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무자비하게 학생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 학생들이 목숨을 잃고 중상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게다가 3·15 부정 선거의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던 3·15 마산의거에 참여한 김주열 마산상고 학생이 실종된 지 27일 후인 411일 아침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왼쪽 눈에 경찰이 쏜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올라 국민들이 분노하자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어 결국 4.19혁명이 터지고 말았다.

▲     © 편집부:

서울 수송초등학교 학생들의 경무대 앞까지 나와 시위하는 모습

4.19혁명은 전국의 초···대학생, 일반 시민, 교수 등 10여 만 명이 참여해 대대적으로 격렬한 시위를 벌여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615일 제2공화국을 탄생시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나 많은 희생을 치루고 말았다. 실제로 시위 진압에 동원된 무장 경찰들과 깡패들이 최루탄을 쏘거나 곤봉을 휘두르거나 총을 발사하여 4.19혁명 과정에서 186명이 사망했고, 1500여 명이 부상을 당해 유가족들의 마음을 지금도 아프게 하고 있다. 특히 418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구속된 동료 학우들의 석방과 학원 자유를 요구하며 평화시위를 벌인 후 귀가하던 고려대 학생들이 청계천 4가를 지날 때에 경찰과 모의한 반공청년단이라는 정치깡패들의 습격을 받고 중상을 입어 도로 여기저기에 쓰러지자 애국 시민들이 분노했다. 그리고 시민들의 요구가 한꺼번에 폭발하여 시위가 난무하는 바람에 사회질서가 혼란하고, 경찰서 등 관공서 건물이 파손되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청년학생들이 주도한 4.19혁명은 한국의 역사에서 학생과 일반 대중이 봉기하여 독재정권을 쓰러뜨린 아시아 최초의 사건으로 헌법 제1조 제2항에서 규정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증해 주어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민주주의 정신을 똑바로 심어주었다. 그리고 4.19혁명은 전두환 신군부의 권력에 맞선 19805.18광주민주화운동,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한 19876월 민주항쟁,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킨 2017년 촛불 시민혁명 등 민주화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쳐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탄탄한 초석을 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역사학자들은 8.15 광복이 '첫 번째 해방'이었다면, 4.19혁명은 '두 번째 해방'이었다고 언급한다. 한편 어느 역사학자는 4.19혁명을 절대왕정의 구체제를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에 비유하였고, 어느 경제학자는 4.19혁명을 국가 독점 자본주의를 해체한 민주적 혁명으로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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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일 하야하고 청와대를 떠나 하와이로 망명길에 오른 이승만가 허정 수반

4.19혁명이 전국민적 저항과 군지휘부의 무력동원 거부로 성공을 거두자 이승만 대통령이 426일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을 하는 바람에 야당인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다. 반공보수가 당내의 정책이었던 민주당은 시민들의 요구사항에 부응하지 못하고 4.19혁명을 4.19사태로 저평가했다. 무엇보다 장면 내각 때 경찰 내 발포 책임자에게 무죄 선고를 하자 학생들과 시민들은 크게 실망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민주당은 장면 총리가 주도하는 신파와 윤보선 대통령이 주도하는 구파의 대립으로 여전히 정치사회적 혼란이 끊이질 않았다. 그 틈을 타서 1961516일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들이 일으킨 쿠데타는 5.16 혁명이라 치켜세우고 4.19혁명을 깎아내리기 위해 4.19의거라고 폄하했다고 한다.

그래도 현행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에는 자유, 민주, 정의 등 4.19정신을 이어받는다는 문구가 기록되어 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4.19혁명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 4.19817에 국립 4.19 민주묘지 · 기념탑 · 기념관을 조성하고, 인근의 경전철 역명을 4.19민주묘지역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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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 4.19817에 위치한 국립 4.19 민주묘지


4·19묘지에는 445분의 419혁명 민주영령들이 안장되어 있고, 19954·19혁명 35주년에 국립묘지로 승격되었다. 그래서 4·19묘지는 민주성지로 불리고 있다.

4.19 운동이 크게 벌어진 곳 중 한 곳인 광주광역시에는 4.19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 2012414일 금남 56번 버스를 419번 버스로 바꾸었다.

서울특별시 강북구에서는 2013년부터 해마다 4.19 혁명 국민문화제라는 이름으로 각종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기념식은 각계대표, 4.19혁명 유공자 및 유족, 일반시민, 학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와 헌화분향, 경과보고, 4.19혁명 유공자 포상, 기념사, 기념공연, 4.19의 노래 제창 순으로 거행된다. 특히 기념공연은 4.19혁명에 참여한 다양한 계층의 이야기를 극과 노래, 다양한 퍼포먼스로 표현하여 민주주의를 향한 염원과 값진 희생으로 쟁취한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메시지를 전해주어 인기가 많다.

그런데 2020년 제604.19혁명 기념식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여 거의 모든 행사가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바람에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무척 아쉽고 안타깝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는 거져 얻어지지 않고 국민들의 오랜 세월에 걸친 장렬한 투쟁과 희생으로 얻어진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는 그 안에 수많은 국민들의 피와 땀과 눈물과 열정이 녹아 있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앞으로 4.19혁명 정신인 자유, 민주, 정의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확고하게 수립하기 위해서는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에서 4.19혁명 관련 민주시민교육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시인, 문학평론가) 대산 신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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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4/17 [08:49]  최종편집: ⓒ 천안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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