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로고
광고
정치·자치사회·생활경제·농업교육·환경·의료문화·관광사설·칼럼기획·특집·인물
로그인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인사   부음  
편집  2018.12.12 [11:03]
<특별기고>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포암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신상구

 교육자이자 항일독립운동가인 포암(逋巖) 이백하(李栢夏, 1899-1985) 선생은 구한말인 1899년 4월 17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석곡리 목골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인 오당(珸堂) 이상수(李象秀, 1820-1882) 선생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제자로 시문과 교육방법론에 능한 조선시대 말의 대학자로 추앙받던 인물이다.

▲     © 편집부

            1978년 충북도청에서 국민훈장 애족장을 받는 포암 이백하 선생

   기미년 3월 1일 서울 종로구 파고다(탑골)공원에서 항일독립만세운동이 벌어진 것을 계기로 이 운동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퍼져나가자 그의 가슴속에는 애국심이 활활 불타올랐다.그는 천직인 오송보통학교 교사직마저 미련 없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업에 종사하면서 성남면의 유림 대표 자격으로 아우내장터 항일독립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그는 먼저 동지들의 의견을 모아 종합적인 거사계획을 세우고 유관순 열사가 서울에서 은밀히 몸에 숨겨 가지고 온 파고다(탑골)공원 독립선언서를 참고, 536자의 쉬운 한글로 기록된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를 구국동지회 명의로 초안하고 복사해 배포했다. 그리고 김구응(金球應), 김교선(金敎善), 김상철(金相喆), 김상훈(金相訓), 김용이(金用伊), 박제석(朴濟奭), 박봉래(朴鳳來), 유관순(柳寬順), 유중권(柳重權), 유중무(柳重武), 이순구(李旬求), 조만형(趙萬衡), 조병호(趙炳鎬), 조인원(趙仁元), 한동규(韓東奎), 홍일선(洪鎰善) 등과 함께 기미년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항일독립만세시위를 주도했다.


   특히 포암 이백하 선생은 혈기왕성하고 애국심이 강한 유관순(柳寬順, 1902-1920) 열사를 잘 지도해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시위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나 결국 일제에 검거돼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직후 그는 중등교사로 초빙을 받아 중등교육계에서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면서 항일독립사상 고취 함양에 진력했다. 실제로 그는 명문교인 충주중, 청주고, 청주여중, 서울의 서울여상에서 오래 동안 재직하면서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양성했다. 충주중 재직 시에 배출한 제자로는 문학평론가 유종호(柳宗鎬)와 충청북도 부지사를 역임한 홍순기 등을 들 수 있다. 청주고 재직 시에 배출한 제자로는 내무장관과 국회 부의장을 역임한 김종호(金宗鎬), 농수산부장관과 정부장관을 역임한 정종택(鄭宗澤), 14대 충주시장을 역임한 이상용, 동국대 총장을 역임한 문학평론가 홍기삼(洪起三) 문학박사 등을 들 수 있다.

   
                       청주고 교가
                                         작사 이백하
                                         작곡 김하경

                         <제1절>
               높은 갈문을 찾아 모여든 우리
               어버이 스승님의 뜻을 받들어
               꾸준히 갈고 닦아 힘을 기르니
               보아라 청고는 젊은이 등불
                         <제2절>
               무궁화 묵은 그루 다시 북돋고
               옛 나라 새 목숨을 가다듬어서
               반만년 한 배의 길 힘써 지키니
               보아라 청고는 청고는 나라의 방패
   


   특히 그는 청주고 교가를 작사하고 국어 시간에 틈나는 대로 자기의 항일독립운동 체험담을 유관순 열사와 관련시켜 들려주었으며 독립선언서를 가르칠 때에는 반드시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교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이처럼 포암 이백하 선생은 전주이씨 명문가에서 태어나 일평생 항일독립만세운동과 초·중등교육에 헌신하다가 1985년에 87세를 일기로 타계했고 그의 유해는 지금 대전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
   포암 이백하 선생은 충청지역의 항일독립운동과 초등과 중등교육계에 많은 업적을 남긴  애국지사로 1990년 12월 26일 국민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던 구국동지회의 실체를 밝히지 못하고 이 선생이 기초한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원본을 찾지 못해 그가 한국의 항일독립운동사에 남긴 위대한 업적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     © 신상구

신상구/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8/04/02 [08:13]  최종편집: ⓒ 천안일보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개인보호정책 회사소개 광고/제휴 안내 만든이 청소년보호정책 기사제보 보도자료 기사검색
천안일보ㅣ 등록번호: 충남아0005호ㅣ등록연월일: 2005년 9월 9일ㅣ발행인:주)언론홍보진흥원 홍창석ㅣ편집인:황인석ㅣ청소년보호책임자: 황인석
대표전화ㅣ 041)564-2000ㅣ팩스: 552-5634ㅣ충남 천안시 동남구 문화로14. 306호
Copyright ⓒ 2005. E-mail: hins115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