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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2.18 [01:03]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기고> 평화의 사도 윤동주 마법
 
황선영

  2017년 12월 30일은 저항적이고 예언자적이고 성찰적인 민족시인이자 항일독립운동가인 윤동주(尹東柱) 탄생 100주기가 되는 아주 뜻 깊은 날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식민지의의 지옥같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 한민족(韓民族)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실한 소망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견주어 노래한 대표적인 민족시인이다. 
   그는 북간도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明東村)에서 아버지 윤영석(尹永錫, 1895-1962)과 어머니 김용(金龍, 1891-1947) 사이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간도 이주민 3세로 본관은 파평윤씨(坡平尹氏), 아명은 해환(海煥), 필명은 윤동주(尹童柱) 또는 윤주(尹柱)이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일평생 항일독립운동을 했던 조부 윤하연과 외삼촌 김약연의 영향을 많이 받아 어려서부터 기독교 신앙과 저항정신, 애국혼을 가슴속에 착실하게 쌓아나갈 수 있었다.
   그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 수필가인 이양하, 한글학자인 최현배, 사학자이자 민속학자인 손진태 등 당대의 뛰어난 스승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민족의식과 우리말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문학에 대한 꿈을 한껏 키웠다. 유명한 시인인 백석 ․ 정지용 ․ 오장환 등의 시를 읽고 감명을 받아 시를 배웠는데, 좋은 친구인 송몽규 · 강처중 · 정병욱 · 유영 등과 누이동생 윤혜원 ․ 남동생 윤일주(동시 작가) ․ 오촌당숙 윤영춘 등을 만나 휼륭한 민족시인으로 남을 수가 있었다.
 

  그는 연희전문 졸업 기념으로 연희전문 시절에 틈틈이 썼던 시들 중 19편을 골라 엮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란 제목의 자필 시고 3부를 만들었다. 한 부는 이양하 선생에게, 한 부는 정병욱에게 주고 나머지 한 부를 본인이 가졌다. 그런데 이양하 선생이 검열에 통과할 수 없다며 출판 보류를 권하는 바람에 윤동주는 생전에 시집을 발간하지 못했다.


   정병욱은 1942년 4월 윤동주가 일본 릿쿄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건네받은 자필 시고를 고향의 어머니에게 맡기며 “나나 동주가 살아서 돌아올 때까지 소중히 잘 간수”해 달라고 부탁했다. 혹시 다 죽고 돌아오지 않더라도 조국이 독립되면 시집을 연희전문학교로 보내 세상에 꼭 알려달라는 유언이었다. 정병욱의 어머니는 전남 광양시 망덕리 집 마루 아래에 흙을 파내 명주 보자기로 겹겹이 싼 시집을 묻었다. 땅속에 오래도록 묻힌 시집은 1948년 윤동주 사후에 정음사에서 출간되었다. 그래서 생전에 시집을 발간하지 못해 무명 시인이었던 윤동주는 사후에 유명 시인이 될 수 있었다.     
   윤동주 시인은 27년 2개월의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시와 산문을 합쳐 123편(동시 34편)을 창작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윤동주 시인이 1941년 11월 20일 지은 서시 전문)”  
   특히 그는 116편의 시를 남겼다. 무제인 <서시>는 대표시로 3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민족정서를 잘 표현해 동양3국의 교과서에 게재되었고, 동양3국에 시비가 건립되었으며, 지금도 한국 국민들에게 가장 널리 애송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명시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     © 황선영

                 일본 도시샤 대학 교정에 건립된 윤동주 서시 시비

   그는 일제강점기에 한글 사용이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친한 친구들과 자주 만나 문학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한글로 저항시를 계속 창작했다. 그리고 일제의 살벌한 전시체제하에서도 신사참배와 군사교련교육을 거부하고, 징병제도를 비판했다. 게다가 일본의 천황중심제에 반기를 들고 조선 독립을 위해 한겨레의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죽어가는 조선 민족문화를 살리려고 각고의 노력을 했다.
   결국 그는 일제 경찰에 검거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후크오카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생체실험으로 희생되어 1945년 2월 16일 순국했다.
 

  뒤늦게나마 그는 1990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음으로써 청사에 길이 빛나고 있다.
   민족시인 윤동주의 순결하고 고결하고 희생적이고 치열한 자주독립정신과 죽어가는 조선 민족문화 부흥운동은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들 모두에게 사표가 되고 있다. 그리하여 윤동주기념사업화와 한국문인협회를 중심으로 해마다 다양한 윤동주 시인 추모행사가 국내외에서 개최되고 있다.                       
   그런데 일본 후쿠오카 현립대 명예교수인 니시오카 겐지(西崗健治, 72세)가 일본 군구주의의 과오를 반성하고 한일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1994년에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을 만들어 지난 23년 동안 매달 낭송회를 열고, 윤동주 기일인 2월 16일 무렵에 추도식을 올리는가 하면, 2015년부터는 윤동주 시비 건립도 추진하고 있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인 니시오카 겐지 교수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일제강점기 이야기를 하면 결국 싸움이 벌어지는데, 기묘하게도 윤동주를 사이에 두고 대화하면 반대로 대화 분위기가 좋아져서 장차 윤동주 시인을 평화의 사도(an apostle of peace)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 ‘윤동주 마법’이란 신조어를 즐겨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판소리계 소설에 끌려 1981년 한국으로 건너와 연세대에서 춘향전의 대가인 김동욱, 이가원, 설성경 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며 춘향전 중 경판계 ‘남원고사’을 연구하여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숭실대 교수를 역임하여 한국 판소리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니시오카 겐지 교수는 일본 우익단체들의 항의와 견제를 받으면서도 계속 윤동주를 추모하는 각종 행사를 개최하고 있고, 악화된 한일관계 개선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어 앞으로도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런데 윤동주 시인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아직까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윤동주 시인이 일제강점기에 저항적인 서정시를 쓴 대표적인 민족시인으로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으나, 윤동주 시인이 목숨을 걸고 항일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어 아쉬움을 많이 남기고 있다.


▲     © 황선영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문학평론가) 신상구



기사입력: 2017/12/30 [09:36]  최종편집: ⓒ 천안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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